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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매스미디어는 퍼스널미디어다.
발신자의 입장에서 캔버스는 언제나 인간의 뇌이다.
01.
귓속말로 하건, 대로에서 마이크를 대고 떠들건 듣는 사람은 한사람의 개인으로서 듣는다. 그래서 TV를 볼때나 길가다 싸움구경을 할때나 정보를 수용하고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는 개인의 인식 체계는 동일하다. 다만 발신자에 대처하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미디어의 차이는 태도의 차이를 낳은 한가지 요소일 뿐이다. TV에서 액션을 볼때와 길을 걷다가 싸움구경을 할 때도 다르지만, 길거리 싸움구경도 출근길과 퇴근길이 다르다. 같은 TV광고라 하더라도 온 동네사람들이 TV앞에 둘러앉아 기다리던 시절과 본방사수가 외쳐지는 시절은 다른 미디어다. 길도 퇴근길과 출근길은 다른 미디어이다.
02.
미로의 그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회화라는 장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회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당연하다. 사진을 본 사람들의 회화에 대한 태도가 그 이전과 같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림이 하나의 오브제가 되었던 것은 재현이나 묘사만으로 수용자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화가들의 지난한 몸짓이다.
03.
언어와 시청각이미지로 전하고자 하는 정보를 발신하는 것은 수용자의 인식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효율적이고 예측가능한 방법이다. 문제는 수용자의 환경이다.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수용능력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발신자 중 일부는 비정보적 형태로 메시지를 발신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좀 희화화된 형태이지만 신입사원의 입사 면접장에서 볼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지원자들의 메시지 발신 형태가 엽기적이 되어간다. 성공확률은 낮지만 취할 수 있는 전략이고 본다) 캐드베리 광고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다른 형태의 문제점을 낳는다. 정보형태의 메시지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수용자 반응의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04.
그림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그림이 묘사이고 재현일 때는 대부분의 수용자들이 이해하고 반응도 예측가능하다. 더불어 어떤 그림이 더 효과적일지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돈을 내고 그림을 의뢰한 사람도 그 돈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다.) 현재는 어떤가? 해설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대중은 그림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어느게 더 나은지 평가할 수도 없다.(사실 평가할 필요도 없다) 그림의 가치는 몇몇 경매회사나 재화적 가치로 투자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가격으로 매겨진다. 몇몇은 남아서 방법을 모색하고 많은 이들은 캔버스를 박차고 나왔다. 그들은 행위하거나 설치한다.
05.
다시 광고이야기로. 캐드베리광고가 일종의 비구상 이라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캐드베리는 이 광고 이후 크래프트에게 인수되었다) 회화가 그랬던 것처럼 비구상의 광고가 일정부분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회화가 캔버스를 박차고 나오듯 광고도 브라운관을 박차고 나올것…이 아니고 이미 박차고 나왔다. 회화의 일부가 행위예술과 설치미술로 변모했던 것처럼, 광고도 마찬가지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문제는 이 새로운 형태에 대한 방법론이 아직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06.
대행사마다 최종병기처럼 자랑하던 전략모델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시작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새로운 커리큘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을 보지않고 미디어만 바라 보았던 후과라고 생각한다. 이제 누군가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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