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남에 눈에 비친 광고쟁이 남자2

오늘 하루 페북을 뜨겁게 달궜던 ㅎㅎ. 크리에이터들 눈엔 모두다 당나귀로 보인다 이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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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의 정의 남자2


트위터 - 싸고 싶어
페이스북 - 나 쌌다
포스퀘어 - 나 여기서 쌌다
쿠오라 (네이버 지식인과 유사) - 나는 왜 싸는걸까?
유튜브 - 나 싸는것 좀 봐
링크드인 - 저 참 잘 쌉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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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창의력의 상관 관계

번침 독자들 중에 업계에 계시는 분들은 모두 요 동영상을 광고주에게 보냅니다.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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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로서의 광고'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수용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매스미디어는 퍼스널미디어다. 

발신자의 입장에서 캔버스는 언제나 인간의 뇌이다. 


01.

귓속말로 하건, 대로에서 마이크를 대고 떠들건 듣는 사람은 한사람의 개인으로서 듣는다. 그래서 TV를 볼때나 길가다 싸움구경을 할때나 정보를 수용하고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는 개인의 인식 체계는 동일하다. 다만 발신자에 대처하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미디어의 차이는 태도의 차이를 낳은 한가지 요소일 뿐이다.  TV에서 액션을 볼때와 길을 걷다가 싸움구경을 할 때도 다르지만, 길거리 싸움구경도 출근길과 퇴근길이 다르다. 같은 TV광고라 하더라도 온 동네사람들이 TV앞에 둘러앉아 기다리던 시절과 본방사수가 외쳐지는 시절은 다른 미디어다. 길도 퇴근길과 출근길은 다른 미디어이다.  


02.

미로의 그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회화라는 장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회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당연하다. 사진을 본 사람들의 회화에 대한 태도가 그 이전과 같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림이 하나의 오브제가 되었던 것은 재현이나 묘사만으로 수용자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화가들의 지난한 몸짓이다. 


03.

언어와 시청각이미지로 전하고자 하는 정보를 발신하는 것은 수용자의 인식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효율적이고 예측가능한 방법이다. 문제는 수용자의 환경이다.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수용능력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발신자 중 일부는 비정보적 형태로 메시지를 발신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좀 희화화된 형태이지만 신입사원의 입사 면접장에서 볼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지원자들의 메시지 발신 형태가 엽기적이 되어간다. 성공확률은 낮지만 취할 수 있는 전략이고 본다) 캐드베리 광고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다른 형태의 문제점을 낳는다. 정보형태의 메시지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수용자 반응의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04.

그림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그림이 묘사이고 재현일 때는 대부분의 수용자들이 이해하고 반응도 예측가능하다. 더불어 어떤 그림이 더 효과적일지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돈을 내고 그림을 의뢰한 사람도 그 돈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다.) 현재는 어떤가? 해설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대중은 그림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어느게 더 나은지 평가할 수도 없다.(사실 평가할 필요도 없다) 그림의 가치는 몇몇 경매회사나 재화적 가치로 투자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가격으로 매겨진다. 몇몇은 남아서 방법을 모색하고 많은 이들은 캔버스를 박차고 나왔다. 그들은 행위하거나 설치한다. 


05.

다시 광고이야기로. 캐드베리광고가 일종의 비구상 이라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캐드베리는 이 광고 이후 크래프트에게 인수되었다) 회화가 그랬던 것처럼 비구상의 광고가 일정부분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회화가 캔버스를 박차고 나오듯 광고도 브라운관을 박차고 나올것…이 아니고 이미 박차고 나왔다. 회화의 일부가 행위예술과 설치미술로 변모했던 것처럼, 광고도 마찬가지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문제는 이 새로운 형태에 대한 방법론이 아직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06.

대행사마다 최종병기처럼 자랑하던 전략모델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시작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새로운 커리큘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을 보지않고 미디어만 바라 보았던 후과라고 생각한다. 이제 누군가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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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로서의 광고

대개의 경우에 회화를 볼때 우리는 당연히 무엇을 그린 것인가 묻게 된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작품에는 우리가 그림을 볼 때 기대하는 것, 즉 식별 가능한 대상이 빠져 있다. 후안 미로의 그림 < Nocturne > 을 예로 들어보자. 이 그림은 사실 아무것도 재현하고 있지 않다. 제목이 약간의 힌트를 주고 있지만 미묘한 감정의 뉘앙스만이 느껴질 뿐이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회화는 자연을 정확하게 재현해 내는 것에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보다는 색조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에 팔레트의 물감을 어떻게 조합하는가에 더 중요해졌다. "뭘 그린건지 도대체 모르겠어"란 우리의 솔직한 불만이 왜 꼭 미술에만 적용되는지는 조금 이상하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들을때 "무엇에 대한 음악"인가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음악은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 음표들의 배열이어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운명', '전원', '빗방울 소나타' 같은 제목(또는 별명)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귀뜸해줄 뿐이다. 

현대미술은 더이상 현실 속의 무언가를 재현하기 보다 논리적으로는 일상적 사물과 구별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사물(object)이 되었다. 현대 예술의 오브제화. 의미정보에서 미적정보로의 전환. 그림 속에는 순수한 형태와 색채만 남았을 뿐이다. 따라서 재현을 포기한 현대미술에 내용이나 메시지가 있을 수없다. 현대미술에 저게 뭘 그린거냐고 물으면 실례가 되는건 이때문이다. 

광고가 제작되어지는 고전적인 프로세스를 상기해보자. 광고주가 selling point를 결정하면 기획자가 브리프로 정리하고 카피라이터가 글의 형태로 사고의 프레임을 만들고 아트디렉터가 가장 효과적인 비쥬얼을 찾는다. 라디오광고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광고물은 비쥬얼의 형태를 띈다. 결과적으로 광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메시지를 비쥬얼로 재현(또는 확장)하는 것의 다름 아니다. 표현으로서의 creative가 철저히 message에 종속되는 이유다.

현재 브랜드간의 가장 치열한 싸움은 서비스의 영역에서 벌어진다. Apple Store, IKEA, Starbucks는 그들의 이노베이션 역량을 고객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바꾸는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 제작팀과 이런 대화를 했다. '우리 서비스가 좋아요'라고 메시지를 던진다고 사람들이 믿을까? 그리고 그게 다르게 들릴까? 그것보다는 좋은 서비스가 어떤 느낌인지 보여주는게 낫지 않을까? 예를 들어, 좋은 서비스는 마치 목욕을 마친 강아지가 기분좋게 털을 말리는 것 같은 기분이야. 즉, 메시지로서의 광고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오브제로서의 광고가 가능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부분 현대미술에 대한 언급을 진중권의 미학책에서 대부분 빌려왔다)

Cadbury의 Gorilla가 2008년 칸느 대상을 받았을때, 많은 사람들은 크리에이티브의 소재를 무한대로 확장한 대담함에 의의를 두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적으로 소비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 했던것 같다. 그러나 위의 프레임을 대입해 생각해보자. 이 광고는 "에너지원이 듬뿍 들어있는 초코릿은 기운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띄워준다"를 메시지로 던지지 않고 직접 체험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TVC 자체가 초콜릿이 만들어내는 넘치는 감성을 따라가는 짧은 여행이 된다. 



DC Shoes의 무려 9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을 보자. 이걸 메시지적으로 해석하는건 바보같은 짓이다. 이 브랜드는 스케이트보드, 스노우보드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 슈즈를 만든다.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B급 헐리우드 영화에 발리우드를 짬뽕시킨 이 작품은 디씨슈즈를 싣는 느낌 그 자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DC는 엽기의 표상인가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crazy, extreme, funny, bold, playful 같은 스포츠 브랜드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이미지 자산들을 연상시킨다.


예전에 어떤 선배가 광고를 잘 하려면 뮤직비디오를 열심히 보라고 했다. 그 형은 메시지를 시각적 체험으로 전환시키는데 뮤비 감독들보다 탁월한 사람들이 없다는걸 알았던 것 같다. 네오그런지 밴드 The White Stripes는 록뮤직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곡편성을 최소한으로 하고 비쥬얼적으로도 레드와 화이트 이외는 쓰지 않았다. 그들의 뮤직비디오 <Seven Nations Army>를 소개한다. 궁극의 순수한 원형으로의 회귀란,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주제가 눈으로 쉽게 이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제 모든 광고가 "도대체 메시지가 뭐야?"라는 질문에 꼭 답을 해야하는건 아니지 않을까? 뇌가 아니라 척수로 받아들여야 하는 크리에이티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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