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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vs. 광고

다시 포스트시즌의 계절. 보면 볼 수록 야구랑 광고는 많이 닮았습니다.

I. 좋은 투수

좋은 투수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팀에게 이길 기회를 주는 피칭을 하는 투수라고 생각합니다. 승수, 방어율, 승률 다 중요한 지표지만,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투수가 완봉을 해도 타선이 1점이라도 내주지 않으면 무승부 밖에 하지 못합니다. 투수는 그만큼 팀의 다른 부분에 종속된 존재입니다. 매일 공이 긁히고, 원하는 곳에 팍팍 꽂힌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겠죠. 하지만 오늘 따라 컨디션이 최악일 수도 있고, 심지어 작은 부상 중일 수도 있습니다. 스피드도 나오지 않고, 제구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면, 투수도 사람인데 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만약 비디오 게임이라면, 첫 3이닝에 7실점 정도 했다면 확 리셋 버튼을 누르고 싶어집니다. 경기 초반이라면 아직 우리 타선도 만회할 기회들이 남아 있습니다. 7실점 한 건 잊어버리고 이후 게임을 잘 풀어나가 실점을 최소화해서 우리 야수들이 경기를 포기 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팀에게 이길 기회를 주는 피칭입니다.

AE는 야구로 치면 투수 역할입니다. 광고주의 날카로운 예봉을 피해 모두 범타로 처리한다고 해도 경기의 승부 자체를 가를 순 없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매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을 수 있는 AE가 어디 있겠어요? 이유가 나의 실투이든, 야수진의 실책이든 아니면 광고주가 너무 '컨디션'이 좋았든간에, 주자는 나가게 마련이고 실점 위기는 한 경기에서 여러번 나옵니다. 위기에서 보이는 집중력, 이것은 지식이나 경험과 구분되는 별도의 덕목입니다. 그래서 집중력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경기가 이상하게 꼬이는 날, 자신의 실력 발휘도 다 하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투수들이 있습니다. 자기 구위에 자신이 있었을 수록 실망감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거죠. 정말 맘 먹고 시작한 프로젝트, 하늘이 내린 기회와도 같은 경쟁PT, 욕심이 앞섭니다.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큽니다. 브리프도 허술하고, 제작물은 불안하고, 광고주는 지랄이고, 다 때려치고 싶을때 꼭 3이닝 7실점한 투수의 심정이 됩니다. 그때 누구보다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선수가 투수고, 투수가 맘을 모질게 먹으면 또 길이 보이고 역전의 기회가 열리는거라고 믿습니다.


II. 스테로이드

메이저리그가 최근 몇년간 약물 파동으로 시끄럽습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 매니 라미레스까지 걸렸으니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팬들은 비난합니다. 약물 복용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어도 없습니다. 하지만 좀 황당한 생각을 해 봤어요. 만약에 먹으면 아이디어가 펑펑 샘솟는 약이 있다면, 난 그 약을 과연 외면할 수 있을까? 물론 비겁한 짓이고 부끄러운 행동이란걸 알지요. 게다가 자주 복용하면 후에 뇌손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경고도 듣습니다. 그런데 정말 지면 안 되는 PT라든지, 이번에도 안을 못 팔면 광고주가 날아갈 상황이라면 그런 약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게다가 당신이 회사에서 아직 주전으로 확실한 인정을 못 받고 있다든지, 결혼하고 애도 생겨서 연봉도 올라야 하는데 윗사람들이 큰 일을 맡겨주지 않는다면 더 솔깃해지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스테로이드 복용한 선수들을 손쉬운 길을 택했다고 비난합니다. 맞는 말이지요. 그러나 왜 톱 클래스 선수들이 더 많이 했을까 생각해보면 좀 다른 생각이 듭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한 선수, 그리고 주위의 기대를 도저히 저버릴 수 없는 선수가 더 큰 유혹을 받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가 샘솟는 주사제가 없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


III. 3할

10승 투수는 만들어지지만, 3할타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합니다. 3할은 10번 타석에 들어서서 3번 안타를 쳤다는거죠. 거꾸로 생각하면 10번 중에 7번은 실패했다는겁니다. 어디서 본건데, 세링게티 초원의 사자도 눈독 들인 사냥감에게 달려 들었을때 잡을 확률이 30%, 실패할 확률이 70%라고 합니다. 3할은 나름 자연의 법칙인 셈입니다.

이 생각을 마구 일반화해보면, 좋은 제작팀도 10번 중 7번은 평범한 아이디어가 나오는게 이상할게 없는 겁니다. 만약에 방망이가 터지는 날은 이기고, 숨죽인 날은 지는 팀이 있다면 아마 그 팀은 포스트시즌에 가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팀은 방망이가 안 터질때 '발야구'를 하든, 대타를 내든, 스퀴즈를 걸든 점수를 짜내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잘 팔리고, 그렇지 못한 아이디어는 광고주에게 팔기 어렵습니다. 당연한 이치죠. 그러나 부진한 아이디어라도 광고주를 안심시키고 추후에 잘 발전시켜서 좋은 캠페인으로 만들 수 있는 대행사가 강팀입니다. 그리고 7할의 실패에 대해 잘 이해하는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현상임에도 그 건 하나만으로 상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분위기라면 다음 타석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도 야구에선 아무리 못 치는 타자도 2할은 칩니다. 회사에서 자신의 성적이 2할이 안 된다면 반성합시다^^)

by 번개와피뢰침 | 2009/10/11 19:19 | 남자2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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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enisKen at 2009/10/11 21:44
스테로이드와 똑같은 것이 한가지 있네요..표절.
Commented by 번개와피뢰침 at 2009/10/16 10:59
남자2) AE들을 위한 격언. You cannot always be in control. But you can be in command.
Commented by Maxmedic at 2009/11/04 17:07
마지막 문구가 의미심장하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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