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광고쟁이의 대선 관전평 남자2


1. 다자대결은 대세

주요 정당에서만 무려 5명의 후보가 완주를 할 태세다. 다당제는 세계적인 추세다. 연립정부가 당연한 유럽은 말한 것도 없고, 양당제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도 Lib Dem, UKIP, SNP 등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 유의미한 경쟁을 하고 있다. 기성 정당들이 국가와 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대안에 대한 유권자의 욕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쉽게 전파할 수 있게 된 유권자들이 보수-진보 사이의 양자택일에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브랜드의 영역에서도 다자대결이 흔해지고 있다. 경쟁의 새로운 축 - 예를 들어, 테크놀러지나 기업윤리 등이 중요해지면서 마이너한 브랜드나 새로운 브랜드에게도 기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Airbnb가 Hilton과 경쟁하고 Paypal이 Visa의 고객을 잠식하는가 하면 Uber는 Hertz의 존재 의미를 지우고 있다. 한국에서 오뚜기의 부상에서 볼 수 있듯이 제품력이나 유통망 같은 기존의 경쟁 우위와 무관한 윤리성, 정직성 같은 요소들이 소비자 선택의 이유가 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란 국가적 재앙 때문에 치루는 선거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단일화를 강요받던 과거 선거보다 보는 재미가 있다>


2. 포지셔닝과 확장의 법칙

솔직히 말해 안철수와 유승민 사이의 정책적 차이는 무시할만큼 작다. 그런데 왜 한쪽은 한때 문재인과 양강 구도를 형성할만큼 확장성에서 뛰어나지만 다른 한쪽은 TV 토론을 저렇게 잘 하는데도 지지율이 꼼짝을 안할까? 이건 포지셔닝의 차이 때문이다.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확장성이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고 반대로는 되지 않는 경우가 브랜드의 세계에선 흔하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여자 샴푸를 쓰는데는 거부감이 없지만 여자들은 절대로 남성용 샴푸를 쓰지 않는다든지, 젊은이들이 쓰는 노트북은 노인들도 쓰지만 나이드신 분들이 쓰는 전자제품을 좋아하는 젊은 소비자들은 있을 수 없는것과 비슷하다. 


기존의 정치에 먼저 환멸을 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은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로부터 시작한다. 개혁과 신선함이 key driver인 선거 시장에선 새롭지만 정서적으로 덜 과격하게 느껴지는 "안정된 진보"란 보다 미세한 포지셔닝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분면 상의 거의 유사한 좌표를 가진 '혁신적 보수'는 이론상으로 가능하지만 확장이 안 된다. 보수는 안철수를 찍을 수 있지만 진보는 유승민을 찍을 수가 없는거다. 선거 막판에 힘이 달리고 있지만 안철수가 '상품기획'을 영리하게 한건 맞다. 


3. MULTI-TOUCH POINTS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이번 선거는 매체 다변화와 파편화(media fragmentation)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시점에 치뤄진다. 소셜과 모바일은 지난번 선거부터 중요했지만 이젠 라이브 스티리밍도 해야 하고 VR도 시도해야 하고 실시간 뉴스룸도 운영해야 하는 선거전이 되었다. 에전처럼 화제성 있는 한방, 예를 들어 후보가 통기타를 치거나 국밥을 끝내주게 먹는 광고 하나 잘 찍어서 여론전을 이끌 수가 없다. 

멀티터치포인트 선거전에선 선거캠프의 기획과 집행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문재인1번가" 같은 아이디어는 축적된 노하우와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축구로 따지면 점유율과 조직력의 풋볼 시대가 온건데 어떤 당은 광고천재 한명을 데려다가 뻥축구를 한다. 홍보전에서 당의 역량 차이가 드러나는건 예전에 드물었지만 요즘처럼 관리해야될 채널이 늘어나면 헛점이 보일수밖에 없다. 

<유기적인 캠페인은 고사하고 슬로건이 들어갈 자리에 '책자형 선거공보'가 잘못 들어간 것조차 걸러내지 못하는 허술한 시스템>


4. 애티튜드의 중요성

궁금하면 인터넷검색으로 다 찾아지는 세상에서 what to say가 전략의 전부가 아니다. 소비자는 브랜드가 입을 떼기도 전에 들어볼건지 말건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브랜드에게 맞는 톤을 설정하고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예전처럼 구색맞추기가 아니라 브랜드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같은 말을 해도 더 믿음이 가는 사람이 있듯이 같은 편익도 더 믿음이 가게 말하는 브랜드가 있다. 언어적 정보가 과잉인 시대에 느낌, 간지, 태도, 표정 같은 비언어적인 정보가 더 부각되는 것이 아니러니하다. 

뭐든지 싸가지를 따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개성을 중요시하는 서구에서도 relatable, welcoming, inclusive 같은 겸손의 화두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 동네들도 좋게말해 양극화, 나쁘게 말해 부자들 나쁜넘 감정이 일반화되었다. Arrogant하게 비치는건 브랜드에게 치명적이다. 이건 특히 명품 브랜드들에게 뜨거운 감자다. 잘난척하지 않으면서 특별함은 놓치지 않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대중에게 한발더 나가는 방향으로 글로벌 전략을 짰다가 중국처럼 아직 배탁적인 가치가 선택에 중요한 시장에서 강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야기가 좀 샜다. 다시 선거로 돌아와서 TV토론은 후보들끼리 경쟁처럼 보이지만 자신들의 지지자를 보고 하는거다. 토론을 보고 지지후보가 바뀌기 보다는 저 후보는 꼭 되야돼 또는 저 후보는 절대 되면 안돼란 기존의 생각을 강화하는 근거로 삼는다. 문재인은 자애로와 보이지만 명확하지가 않고, 심상정은 시원시원하지만 현실성이 없어 보이고, 안철수는 부드럽지만 이리 저리 휘둘릴거 같고, 유승민은 빠삭하지만 다른 사람을 품기엔 부족해보이고, 홍준표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들지 않지만 하는말마다 독설처럼 느껴진다. 

언어적인 요소들은 단기 속성과외로 실력이 확 늘 수 있지만, 비언어적인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건 그 후보가 살아온 인생 그 자체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후보가 하는 말이 아니라 후보가 주는 느낌으로 투표를 하는게 어찌 보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건 아니다. 패키지를 기가 막히게 만드는 회사가 실제로 안에 들어가는 제품도 잘 만드는 경우가 많은것처럼 말이다.  

<x같지만 5년전 대선토론에서 사람들이 기억하는건 이거밖에 없다. How to say가 빠진 what to say는 폭망으로 가는 지름길>


5. 레거시의 문제

요즘의 소비자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을 거부한다. 왜 비지니스를 하는지, 왜 이런 제품을 내놓았지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브랜드에게 레거시는 대단히 중요하다. 현대적으로 해석된 브랜드의 전통과 유산은 소비자가 묻는 WHY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루이뷔통, 버버리,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들에겐 당연하고 애플같은 테크 기업에게도 스티브 잡스가 시작한 회사란 레거시는 대단히 중요하다. 삼성이 그렇게 많은 마케팅 비용을 쏱아 부어도 브랜드 자산이 더디게 축적되는 이유가 레거시의 부재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근본있는 기업이란 철학이 있는 기업이고, 소비자 입장에선 브랜드가 던지는 메시지를 해석할 맥락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국민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레거시는 가장 손쉬운 스토리텔링의 방법 중 하나다. 박정희가 만든 산업화 우리가 이어가겠다, DJ와 노무현의 민주주의 우리가 완수하겠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가 유권자를 설득해 온 대표적인 내러티브다. 박근혜의 탄핵으로 한국의 보수는 박정희라는 레거시를 완벽하게 잃고 말았다. 반면 김대중과 노무현은 보수 유권자도 함부러 까지 못하는 레전드가 되었다. 이번 대선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선거에서도 보수가 레거시 문제로 오래 동안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뭐, 기-승-전-종북이란 내러티브가 있긴 하구나. 
 

<레거시를 현대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변주하는 것도 마케팅 잘 하는 브랜드들의 특기다>






덧글

  • 아부바르크 2017/07/19 10:56 # 삭제 답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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